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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생각

지적 우월감

by 이영때 2025. 3. 30.

회사 사내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보통 공지나 장터 등의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색다른 내용의 게시글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침에 회사에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이 계시는데, 자리마다 개인 휴지통을 치우느라 허리를 많이 굽히신다. 몇 십 개를 치우려면 정말 힘드실 것이니, 우리가 복도에 쓰레기통을 쓰는 게 어떨까요?
ㄴ저도 지금 당장 제 쓰레기통 비웠습니다. ㅠㅠ

 

 

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역겨움이 올라왔다. 이모님들이 치우는 건 이모님들의 일인데 그걸 왜 본인이 나서서 깨어있는 척하는 거지? 청소하시는 이모님의 상황이나 청소 방식, 도움을 주는 법 등 원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역겨웠다.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깨어있는 생각(본인 기준)을 하고 있어. 어때 이런 나 멋지지 않아?'

이 느낌이 글 전반에 묻어나고 있어서 재수가 없었다.

 

구축된 청소 시스템을 본인의 지적 우월감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적하고 본인 입맛대로 개조하려고 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정 마음에 걸리면 본인이 새벽에 출근해서 쓰레기통을 다 비우던가, 그런 건 하지도 못하면서 게시글을 통해 '멋진 나'를 연출하는 게 전부인 주제에 말이다.

 

이런 글을 봤었다. PC주의, 페미니즘이 빠지기 쉬운 이유가 아주 조금만 공부해도 본인의 지적 우월감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려면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하지만, 조금만 공부해도 대충 앞뒤가 맞아보이는 말로 깨어있는 척을 할 수 있으니까.

 

 

회사이기 때문에 적나라한 댓글은 달리지 않았지만, '속상해요' 감정 표현에 추천을 누른 사람이 많았다. 그걸 보고도 "아...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 모르면 공부하세요 ;;"라는 마음을 가지겠지

 

내가 그 사람 면전에서 한마디도 못 하고 방구석에서 글로 써재끼는 것처럼. 그 사람도 쓰레기통을 쳐 비우고 싶은 생각이 들면 방구석에서 글로 써재낄 것이지, 왜 많은 사람이 보는 게시판에 써서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을까?

지적 우월감은 '우월'이란 단어에서 오듯이 다른 사람을 깔봐야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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