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사내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보통 공지나 장터 등의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색다른 내용의 게시글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침에 회사에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이 계시는데, 자리마다 개인 휴지통을 치우느라 허리를 많이 굽히신다. 몇 십 개를 치우려면 정말 힘드실 것이니, 우리가 복도에 쓰레기통을 쓰는 게 어떨까요?
ㄴ저도 지금 당장 제 쓰레기통 비웠습니다. ㅠㅠ
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역겨움이 올라왔다. 이모님들이 치우는 건 이모님들의 일인데 그걸 왜 본인이 나서서 깨어있는 척하는 거지? 청소하시는 이모님의 상황이나 청소 방식, 도움을 주는 법 등 원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역겨웠다.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깨어있는 생각(본인 기준)을 하고 있어. 어때 이런 나 멋지지 않아?'
이 느낌이 글 전반에 묻어나고 있어서 재수가 없었다.
구축된 청소 시스템을 본인의 지적 우월감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적하고 본인 입맛대로 개조하려고 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정 마음에 걸리면 본인이 새벽에 출근해서 쓰레기통을 다 비우던가, 그런 건 하지도 못하면서 게시글을 통해 '멋진 나'를 연출하는 게 전부인 주제에 말이다.
이런 글을 봤었다. PC주의, 페미니즘이 빠지기 쉬운 이유가 아주 조금만 공부해도 본인의 지적 우월감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려면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하지만, 조금만 공부해도 대충 앞뒤가 맞아보이는 말로 깨어있는 척을 할 수 있으니까.
회사이기 때문에 적나라한 댓글은 달리지 않았지만, '속상해요' 감정 표현에 추천을 누른 사람이 많았다. 그걸 보고도 "아...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 모르면 공부하세요 ;;"라는 마음을 가지겠지
내가 그 사람 면전에서 한마디도 못 하고 방구석에서 글로 써재끼는 것처럼. 그 사람도 쓰레기통을 쳐 비우고 싶은 생각이 들면 방구석에서 글로 써재낄 것이지, 왜 많은 사람이 보는 게시판에 써서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을까?
지적 우월감은 '우월'이란 단어에서 오듯이 다른 사람을 깔봐야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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